[동티모르 커피로드]② 동티모르의 역사에 사소한 흔적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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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가 진행될수록 사물들에 대한 더욱더 많은 새로운 사실들이 인간의 마음과 정신을 꽉 채울 것이다. -에드워드 O. 윌슨,《바이오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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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꿀렁거린다.
수도 딜리의 풍경과 또 다르게, 산지는 어쩔 수 없이 역시 산지다. 꾸르릉꾸르릉. 차의 꿀렁거림은 당연한 것이다. 처음 만난 이방인을 등짝에 태우기까지 했으니, 차라고 오죽하겠나. 나도 꿀렁, 차도 꿀렁. 우리는 그렇게 꿀렁거리는 것으로 하나가 됐다.
나의 꿀렁거림은 설렘이다. 커피는 평지에서 자라지 않는다. 산지형 생물이니까, 나는 그를 만나기 위해 당연히 올라가야 한다. 평지형 인간이 산지형 생물을 만나러 가는 길, 평탄한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동티모르의 풍경은, 다른 동남아의 것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트럭이든 버스든, 사람을 꾸역꾸역 매달고 다닌다. 뒤뚱거리듯 왠지 불안해도 가기도 잘도 간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매달린다. 갖가지 자세와 표정으로 차와 합체한다.
나도 군대에서 군트럭에 매달려봤지만, 저렇게까진 해보지 않았다. 꿀렁거려도 편하게 가는 내가 약간은 미안하다.
달리 말하면, 동티모르는 아직 모터리제이션(Motorization) 사회가 아니다.
자동차가 일상과 밀접하게 관련되고 광범위하게 보급돼 있지 않다. 다행이랄까. 모터리제이션이 본격 진전되면, 당신도 알다시피 자동차를 놓고, 사람을 가르는 일이 비일비재해진다. 차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부터, 어떤 차를 소유하고 있는가로 사람을 평가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저항 없는 일상이 된다.
물론 동티모르에도 차는 꼭 필요하다. 나 같은 평지형 인간이 높은 커피 산지를 갈 수 있는 건, 차 덕분이다. 평지형 인간에게 아웃도어의 후원·협찬이 있을 턱이 없잖나. 커피를 만나고픈 마음에 자리한 것은 등정주의도 아니요, 등로주의도 아니다. 오로지, 날 받아아달라는 애원과 한 없는 겸손. 내 일상을 지배하는 커피를 키운 대지를 만난다는, 득템의 순간을 향한 종종걸음.
다시 더 자세하게 얘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커피는 모순의 시대를 뚫고 분출한 액체다. 커피를 본격적으로 들이키기 시작한 시민사회 형성기로 돌아가보자. 시민사회의 이념적 동력이 뭔가.
자유, 평등, 박애!
커피라는 검은 혈액의 투여 혹은 흡입. 근대적 시민의식의 형성은 커피를 일정부분 빚졌다. 커피하우스에서 이뤄진 작당모의. 커피는 지성을 깨우고(잠을 못자게 하고), 토론을 빚었다(수다를 이끌어냈다).
그럼에도, 그 시민사회는 자국 울타리에만 머물렀다. 그것도 주로 남성들에게만! 물론 그 시민사회는 완성형이 아니었다. (내 부박한 지식으로, 한국은 언제고 시민사회를 제대로 열어젖힌 적이 없다. 지금까지도!) 울타리 밖으로 나갔을 때, 자유, 평등, 박애라는 시민사회의 이념은 탱자가 됐다. 인종주의나 쇼비니즘(배외주의)이 그것이다. 씁쓸하지 않나?
지들 나라의 시민사회 완성을 위해 식민지를 두고, 커피를 마시려고 식민지에 커피나무를 심게 했다. 당시 많은 열강이 그랬다.
구름과 안개가 산을 에워싸고 있다. 저것이 커피가 자라는 풍경이다. 열대의 어딘가에 나는 있는 것 같았다. <아비정전>의 시작과 끝을 장식했던 필리핀의 열대우림이 떠올랐다. <아비정전>의 슬픔 띤 정조와는 달랐으나, 동티모르라고 왜 슬픔이 없겠나. 커피나무도 그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차는 오르고 또 오르고 넘고 또 넘는다. 조디와 하 대표님의 말은 통하지 않으나 말이 되는 대화는 계속 되고 있다.
어디에도 같은 풍경이 없으니, 심심하지 않다. 중간중간 쉬면서 나는 나무를 바라봤다. 나무가 품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물론 내 공력으론 어림도 없다. 아쉽고 슬픈 일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달렸다. 어스름도 지나갔다. 어둠이 깊다. 마우베시(Maubisse)란다. 딜리에서 약 70km 거리라지만, 척박하고 험준한 산지를 오르내리다보니 시간은 꽤나 걸렸다. 해발 1400m에 위치한 산간 마을.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밤하늘이 훌쩍 내려앉아 있다.
우리가 묵은 곳은 과거 식민시대 포르투갈 성주의 거처였던 곳이다. 현재는 게스트하우스 비슷하게 운영되는데, 객실이 6개, 레스토랑이라고 말하기 힘든 식당이 있다. 겉으로 보아, 나름 운치가 있다. 물론 동티모르는 관광시설이나 편의시설을 거의 기대할 수 없다. 편안하고 안락한 여행? 그런 건, 동티모르에서 저 멀리 안드로메다의 얘기다.
대신, 깊고 깨끗하다. 그 깨끗함, 우리가 길들여진 청결함과는 또 다른 것이지만.
기분이 약간 묘했다. 포르투갈 성주의 관사라. 저 아래 동네가 보였고, 성주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통치를 했던 것 같다. 모든 것이 오래되고 낡았다. 시간이 멈춘 것 같다.
포르투갈은 시민사회의 형성이 부실했었다. 동티모르를 식민지로 삼았을 무렵인 16세기, 포르투갈은 해양왕국으로 자리매김할 시점이었다. 동티모르도 포르투갈의 식민지 경영의 희생자였다. 포르투갈은 식민지를 통해 노예 획득은 물론 주요 농산물을 거둬들였다. 커피도 나중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곳의 성주도 본국에 가져갈 커피를 관리하는 것이 가장 큰 임무였을지 모른다. 해발 1400m의 깊고 깨끗한 아라비카 커피를 찾는 포르투갈 왕조와 귀족들의 명령 혹은 앙탈 때문에.
덕분에 동티모르 사람들은 노예처럼 일을 했을 것이다.
성주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마지못해 임무를 완수했지만 동티모르 사람들에게 관대했을까, 아니면 채찍을 들고 노동을 착취했을까.
해상왕국 포르투갈에는 막대한 부가 쌓였으나 국부 유출 등으로 부르주아 계급이 형성되지 못했다. 즉, 시민계급이 만들어지지 못했다. 그리고 18세기 후반 개혁 시도 등이 있었으나 봉건세력의 반발로 무위가 됐고, 프랑스혁명 등의 영향이 파급된 19세기에도 중산층은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
동티모르가 포르투갈의 식민에서 벗어난 것은 20세기 포르투갈 내부의 혼란에 힘입었다. 20세기 초 국왕 왕살과 공화파의 혁명으로 공화제가 성립했으나 거듭된 쿠데타와 제1차 세계대전 참전에 따른 경제위기 등으로 혼란 그 자체였다.
마우베시의 성주도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본국에 돌아가지 않기로 마음먹고 이곳 사람들에 동화한 시간이 많은, 널찍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동티모르의 자연과 커피에 취해 그는 그냥 눌러앉기로 했을지 모른다. 그곳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곳이다.
저녁을 먹어야 했다. 배가 고팠고, 동티모르에서의 첫 식사. 좋았다. 그 이상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쌀이 있었고, 고기가 있었으며, 감자가 자리하고 채소가 함께 했다. 멋진 저녁식사다. 허나 이 모든 것은 커피 한 잔을 하기 위한 성찬!
저녁만찬을 마친 우리는 깊고 깨끗한 마우베시의 커피를 손에 들고 입을 적셨다. 동티모르가 내 속을 파고 들었다. 이것은 탐사요, 탐험이다. 동티모르에서의 첫밤이 익어가고 있었다. 커피가 마음을 흘렀고, 이야기가 새어나왔다. 아마도 이곳의 마지막 포르투갈 성주의 유령도 귀를 쫑긋 세워 우리와 함께 였을 것이다. 그의 희미한 웃음소리를 나는 들었다!
양동화 간사의 동티모르 이야기는 그만큼 흥미진진했다. 특히 애정편력사. 그러니까, 다음 이야기는, 그녀는 어떻게 세계 각국의 남자들을 울렸나!